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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가 왜 통신사와 제휴할까?… 닻 오른 스마트선박 경쟁 -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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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20 06:00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연료가 가장 적게 드는 최적 운항 경로를 탐색한다. 내부에 사람이 없어도 고성능 카메라와 라이다(Lidar)가 주변을 식별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한다. 기상 이변에 대처할 수 있고, 광대역 초고속 통신을 통해 250여㎞가 떨어진 원거리에서도 실시간 제어가 가능하다.

자율주행 중인 자동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조선업체 삼성중공업(010140)이 업계 최초로 성공한 5G 기반 원격·자율운항 기술 시연의 한 장면이다. 이날 거제 바다를 항해한 길이 3.3m의 모형 선박은 국제해사기구(IMO)가 정한 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s)을 모두 이행하며 자율운항 기술 검증에 성공했다.

이번 시험 운항으로 삼성중공업은 5G 통신 기술을 활용해 선박의 자율·원격 운항 기술 상용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기술 개발은 삼성중공업이 단독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니었다. SK텔레콤(017670)과의 협력이 빠른 개발을 가능케 했다. 전통적인 굴뚝산업의 대명사 조선업체와 4차 산업혁명의 대표로 꼽히는 통신사. 다소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 손을 잡게 됐을까.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대전) 내 원격관제센터에서 자율운항 중인 모형선박 ‘Easy Go(이지 고)’에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거제 조선소 주변 및 장애물을 확인하는 모습. /삼성중공업 제공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자율운항 기술로 대표되는 스마트선박 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도 오는 2025년까지 1600억원 규모의 자율운항 선박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해 완전 무인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스마트선박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ICT를 활용해 효율적인 운항을 돕는 차세대 선박을 의미한다.

IT와 융합을 통한 ‘스마트화(化)’는 친환경과 함께 미래형 선박을 구성하는 요소로 꼽힌다. 선박의 스마트화 핵심은 자율 운항 제어 시스템(ANS), 선박 자동 식별 장치(AIS), 위성 통신망 선박 원격 제어 기술(IMIT) 등 IT 기술이다.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무인 자율 운항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업계에서는 조선 3사가 일제히 스마트선박 개발에 뛰어든 것을 두고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탈출구를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날로 치열해지는 수주 경쟁, 매년 심화하는 해양 환경규제, 치고 올라오는 후발주자 등 어려움 속에서 선두를 지키려는 조선업계가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LNG선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불안감이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기술 중심 산업으로 전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 추진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개념도. /해양수산부 제공
전 세계 자율운항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어큐트마켓리포츠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및 관련 기자재 시장은 연평균 12.8% 성장해 오는 2025년 시장규모가 1550억달러(약 18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이 먼저 발 빠르게 나섰다. 유럽은 지난 2012년부터 3년간 선박 자율운항을 위한 MUNIN(Maritime Unmanned Navigation through Intelligence in Network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전략 방향을 제시, 유럽연합(EU) 지원하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국 롤스로이스와 노르웨이 콩스베르그가 선두에 섰다. 전자 및 해양솔루션 부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콩스베르그는 롤스로이스의 상선 부문을 인수합병 하는 등 완전 무인 자율운항 선박 시장 선점에 나섰다. 지난 2017년에는 글로벌 미네랄 비료 회사 야라와 협력해 세계 최초로 자율운행 전기 선박 개발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5월까지 시험운항을 마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멈춘 상태다.

세계 최초 무인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도 앞서가고 있다. 영국 프로메어연구소와 IBM은 400년 전 미국 대륙을 발견한 영국 청교도들이 타고 온 배 ‘메이플라워’에서 이름을 따온 ‘메이플라워 프로젝트’를 통해 내년 중 선원 없이 대서양을 횡단할 계획이다. AI 기반 자율운항 선박인 메이플라워는 자율주행차나 자율주행드론처럼 AI를 통해 스스로 바다를 운항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국과 일본도 스마트선박을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제조업 ‘대국’에서 ‘강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스마트선박이다. 일본 정부도 조선 산업 부흥을 위한 ‘해사생산성혁명’ 정책을 세우고 오는 2025년까지 250척 규모의 스마트선박을 일본 내에서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MOL, NYK, 미쓰비시 중공업 등 10개 이상의 해운·조선 기업들이 공동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항해지원시스템 ‘하이나스(HiNAS)’ 실행 화면. /현대중공업 제공
국내 주요 조선사는 통신사와 손을 잡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5G, AI 등 ICT에 익숙한 통신사와 협업하면 스마트선박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SK텔레콤과, 현대중공업은 KT(030200)와 손을 잡았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은 통신사는 아니지만 해운업 관련 IT기술을 개발해 온 HMM(현대상선(011200))과 협력 중이다.

양 업계 간 협력은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KT와 함께 ‘스마트 조선소’를 만들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첨단 항해 지원 시스템 ‘하이나스(HiNAS)’를 SK해운의 25만톤(t)급 벌크선에 탑재했다. 하이나스는 AI가 카메라를 통해 주변 선박을 자동으로 인식해 충돌 위험을 판단하고, 이를 증강현실(AR)로 반영해 선장에게 알린다. 실제 운항 중인 대형 선박에 해당 기술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우조선해양도 HMM과 스마트선박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육상에 있는 선주가 항해 중인 선박의 주요 시스템을 원격 진단할 수 있는 스마트선박 솔루션 ‘DS4’를 HMM의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에 탑재했다. HMM은 AI를 통해 최적 항로를 분석하는 딥러닝 시스템 ‘베슬 인사이트’를 개발하는 등 첨단 IT 기술을 해운업에 맞게 개발해 온 선두주자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다만 자율운항 개발을 유럽·일본보다 5년가량 늦게 시작한 데다 일부 핵심기자재와 기술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빠른 시간 내에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조선해양 기자재 산업의 국산화율은 90%로 선박 건조기술 경쟁력은 확보했지만 선박 내 항해 관련 전자·IT융합 장비의 외산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다.

국내 조선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비와 인력이 해마다 줄고 있는 것도 문제다. 특허청이 지난달 24일 발간한 ‘조선분야 기술·특허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선분야 연구개발비는 2014년 3855억원에서 2018년 1418억원으로 약 63.2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 조선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이후 연구 인력 역시 줄었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조선분야 연구인력은 1738명에서 822명으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기업 연구원 수가 30만4808명에서 36만8237명으로 약 20.81%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과거 2,30년동안 우리나라가 조선강국이었지만 앞으로 미래 먹거리인 자율운항 등 고부가 가치선을 개발하기 위해선 연구개발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조선소를 방문해 ‘과거 영광을 되찾자’고 할 정도로 각국이 조선업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기술 개발은 물론 경쟁국보다 앞서가려면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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