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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3법 1일1법 파고들기
②감사위원 분리 선출
아군 작전회의에 적군 장수가? 한국 재계는 ‘스파이 침투’로 봐
스타벅스 사외이사엔 MS CEO도 “실질적 감시·견제 위해 전문성 주목”
애플-구글 코로나19 접촉 추적 파트너십 이미지. 애플 누리집 갈무리
애플의 이사회 구성원은 모두 7명이다. 이사회 의장은 구글(알파벳)의 생명공학 계열사 캘리코의 최고경영자(CEO) 출신 아트 레빈슨이다. 나머지 이사들도 대부분 애플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는 회사의 전·현직 시이오 출신들이다. ‘애플맨’이라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팀 쿡뿐이다. 특히 이사 겸 감사위원인 수 와그너는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설립자 중 한명이다.
‘삼성 감사위원에 중(中) 경쟁사 스파이 앉혀라?…재계는 패닉’. 지난달 5일 한 경제신문
머리기사 제목이다. 지난 8월 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에 경쟁사인 화웨이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들어와 기밀을 빼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이 기사에는 “아군 작전회의에 적군 장수가 참여하도록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송원근 연세대 교수)는 전문가 발언도 소개됐다. 이런 서사는 정부가 법안을 발표한 이후 두달 남짓 여러 매체와 기관을 돌아가며 되풀이해서 등장한다. 한 종합일간지는 지난 9월 ‘3% 지분으로 감사 뽑는다면 경쟁사 스파이도 안게 될 판’이란 제목으로 엇비슷한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3% 룰’은 감사위원회에 최소한 한명 정도는 지배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인물이 선임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제도이지만, 재계 등은 이를 국내 주력 기업의 기밀 정보를 빼가는 스파이를 불러들이는 장치로 받아들인다. 애플은 뻔히 이런 사실을 알고도 ‘적’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영입한 것일까. 애플의 생각은 전혀 다른 듯 보인다. 2014년 수 와그너가 애플에 합류할 당시 팀 쿡 시이오는 “자본시장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구축한 강력한 경험이 애플이 성장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국내 재계와 일부 전문가들이 ‘스파이’라 여기는 인물을 팀 쿡은 환영한 모양새다. 전복적 상상력으로 스마트폰을 ‘창조’해낸 애플만의 특별한 태도일까. 국내외 다수 자료는 애플이 지극히 상식적인 행보와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한
‘이사회 동향 2019’를 보면, 지난해 에스앤피 회원사에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432명 중 다른 회사의 전·현직 시이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가장 높았다.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같은 투자사 출신도 9%에 이른다. 특히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이 작성한
‘2019년 미국 주주행동주의 연례 분석’ 자료를 보면, 아이칸이나 엘리엇 등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추천해 이사로 선임된 수는 2016년 96명, 2017년 114명, 2018년 116명, 2019년(8월까지) 76명이다.
미국 기업들이 경쟁사 등의 전·현직 시이오나 투자기관 출신 인물을 기꺼이 이사로 영입하는 이유는 뭘까. 제이피(JP)모건 홍콩지사 부사장 등을 지내며 국제금융 분야에 밝은 이남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는 “전문성에 주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벅스의 사외이사에는 현직 마이크로소프트 시이오인 사티아 나라야나 나델라가 있다. 소비자 회사도 아이티(IT)에 대한 전문지식과 통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대면 주문 서비스) 사이렌오더 등 스타벅스가 아이티를 접목해 계속 발전하는 게 그런 이유”라고 강조했다. 전문경영인이 사외이사가 되면 이사회의 감시 및 견제 기능이 더욱 활발해진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경영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계장부를 포함해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애플도 지난 1월 주주들에게 발송한 주주총회 안내문에 이사진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애플의 이사회는 애플의 시이오와 다른 경영진이 적절하고 윤리적인 운영을 하는지 감독하고 주주의 장기적인 이익 제공을 보증한다”고 명시했다.
한국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지난 4월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집계한 2020년 국내 30대 그룹 사외이사 출신별 구성을 보면, 경제·세무 쪽 관료 출신이 36.6%로 가장 많고 학계가 35.1%로 2위였다. 전직 경영인 등 재계 출신은 16.4%에 불과했다. 총수 등 주요 그룹 경영진이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을 거수기나 방패막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사외이사에 경영 전문성이 없는 교수나 전직 관료들이 굉장히 많이 포진해 있는 한국적 상황이 비정상”이라며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처럼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해야 하는데 한국은 가장 위에 총수가 있고 사외이사는 손님일 뿐”이라고 짚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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